그 많던 ‘사과상자’ 어디로…검은돈 전달은 5만 원권_포커 나 포커_krvip

그 많던 ‘사과상자’ 어디로…검은돈 전달은 5만 원권_승리의 철자법_krvip

그 많던 사과상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 각종 명목으로 뒷돈을 받은 여야 국회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면서 구체적인 금품수수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의원 비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사과상자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2009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5만원권의 영향이다.

8일 검찰 등에 따르면 철도부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조현룡(69) 의원은 1억6천만원을 모두 5만원권 현금으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새누리당 박상은(75) 의원과 관련한 거액의 뭉칫돈 의혹도 발단은 그의 운전기사가 차량에서 발견한 5만원권 다발이었다. 지난 6월 검찰이 운전기사 A(38)씨로부터 확보한 현금다발은 5만원권이 100장씩 은행 띠지로 묶인 돈뭉치 6개(3천만원)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60)·김재윤(49)·신학용(62) 의원이 연루된 '입법로비'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김민성(55)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이사장이 이들 의원에게 각각 전달한 돈도 모두 5만원권 현금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대표적인 뇌물 운반수단은 사과상자였다. 1993년 8년 금융실명제 이후 출처와 경로 추적이 가능해진 10만원짜리 수표를 더이상 뇌물용 돈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큼지막한 크기의 사과상자에 1만원권 다발, 그것도 헌 돈으로 채워넣는 방법이 각광받았다.

1만원권 지폐로 사과상자 하나를 가득 채우면 보통 2억∼2억5천만원이 들어갔다. 액수별로 007가방, 골프가방, 라면상자 등도 애용됐다.

검찰의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에는 대기업들이 각각 100억이 넘는 돈을 트럭이나 승합차에 실어 '차떼기'로 한나라당에 전달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2009년 6월 5만원권이 유통되면서 뇌물 전달이 용이해졌다. 뇌물수수, 비자금조성, 범죄수단 등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우려도 있었지만 일반 거래의 화폐관리 편의성, 수표발행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발행이 시작됐다.

5만원권을 이용하면서 같은 공간에 전보다 다섯배 많은 돈을 담을 수 있게 됐고. 이 때문에 종전보다 가볍고 은밀하게 검은 돈이 오갔다.

홍사덕(71)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인인 사업가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3천만원을 받을 때에는 5만원권이 든 쇠고기 선물 택배박스와 중국산 녹각(사슴뿔)상자가 사용됐다.

건설업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1년2월 등을 선고받은 원세훈(63) 전 국가정보원장의 경우 와인상자에 담긴 현금 5천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건네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63) 국회부의장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2008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지만 임 회장이 당시 발행되지도 않은 5만원권을 섞어서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하는 등 해프닝 끝에 무죄를 선고받고 확정받은 바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은 45조39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화폐(기념주화 제외)의 3분의 2가 넘는 67.1%를 차지한 셈이다.

하지만 5만원권의 환수율은 최근 급락했다. 올해 1∼5월 발행된 5만원권은 27.7%만 환수돼 작년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음성 거래 등 지하경제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